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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하이힐 신는 이야기

 

 

 

토니가 처음 하이힐을 신어달라고 했을 때, 스티브는 많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토니는 망설이는 스티브를 닦달하지 않고 단지 부드럽게 그의 어깨 어딘가를 아프지 않게 치며 '뭐,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뒤돌아서 그냥 가버렸다. 스티브는 토니가 자신의 발사이즈에 맞는 하이힐을 주문제작하는 데에 어차피 시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렇게 느긋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토니의 태도에 대해서 탄핵을 할 수 있을만한 어떤 명분이 스티브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어쨌든 토니의 소원한가지를 들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고 그 부분은 뿌연 구름이나 흐릿한 안개나 빛을 잃은 햇살이나 뭐 그런 느낌으로 유야무야되어 있어서 선명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스티브는 토니에게 소원한가지를 들어줘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그리고 토니의 소원은 '하이힐을 신어줘, 캡시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파란색 어때? 파란색.' 그리고 물론 파란색 하이힐이었다. 아니, 절대 안 어울리니까. 그러나 안 어울린다고 말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아서 정말로 곤란했다. 그리고 가장 곤란한 것은 무엇이었냐면, 당연한 상식으로써 스티브 스스로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그 스티브 로저스는 파란색 하이힐이 안 어울린다하는 공식이 토니 스타크에게는 개뿔 쥐뿔도 안 먹힌다는 것이었다. '캡, 천재는 나거든? 바로 나 토니 스타크님. 그 말은 내가 말하는 공식이 곧 세상의 진리란 뜻이야.' 허세 떠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산맥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석유동굴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초원보다 자연스러웠다. 토니 스타크 이콜 세상의 공식이었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스티브 로저스는 파란색 하이힐이 잘 어울린다였다. 과연, 정말이지. ...그럴리가 있냐!!!! 스티브는 세상을 향해 소리를 치고 싶었다. 멍청한 토니 스타크자식아 수트 입고 당장 나와!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내쳐지르는 힘으로 지구를 두 조각 내버리고 말 기세였다. 아, 지키는 것이 일인 히어로가 가질만한 기세로는 좀 위험한 것일까.

 

 

 

그러나 지구는 평온했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히어로라는 말세적인 상황에서도 태양은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이상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빌런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절염도. 스티브는 토니가 직사각형의 반듯한 상자 위를 주황색 끈 리본으로 장식한 것을 들고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진한 갈색의 눈썹이 여덟팔자를 그으며 그 사이의 미간의 주름으로 이어졌다. 그만한 체력의 남자가 우울해하며 어깨를 약간 움츠리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토니는 스티브가 포기했다는 사실을 최대한으로 즐기며, 상자를 한 손으로 든 모습 그대로 스티브의 가슴께 가까이에 가지고 갔다. 꼭 솜털을 든 것 마냥 가벼운 태도다. 아마 잘은 모르지만, 그는 돈이 많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장인을 불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가볍게 그러나 가장 튼튼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었다. 정말로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는구나 지상 최고의 천재씨... 스티브는 목구멍까지 나오는 그러한 말을 간신히 입술 안쪽에만 매달고 그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성공했다. 토니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한순간이라도 무언가가 그의 기분을 망치는 원인이 되어서, 어쩌면 삼분동안만 신고 있으면 끝날(어디까지나 캡의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이 하이힐을 하루 종일 신게 될지도 모르는 일 따윈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티브는 그저, 웃는 듯 우는 듯 곤란한 듯 낭패인 듯 하여간 여러 감정이 뒤섞인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약간 창백해지기까지 한 그대로, 두 손을 들어 리본을 살포시 풀었다. 리본 촉감이 언젠가 만져본 적이 있었던 방방 뜨는 튜튜의 느낌이었는데, 언제 만져본 적이 있어서 이러한 몽실한 구름 같은 감각을 기억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마도... 아메리카 아이돌 히어로(핀업걸) 시절 때의. 70년 전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스티브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기대대로 거대한... 파란색 에나멜의 구두가, 스티브를 반겼다.

 

 

 

'토니...'

 

 

 

'읏흠,♪ 이쁘네.'

 

 

 

할 말이 없어 창백해지다 못해 푸르죽죽하게 변한 얼굴의 안색에 노골적으로 지친 표정을 하고, 스티브는 지그시 눈을 감고 눈두덩이 위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충격으로 눈꺼풀 안쪽에서 눈물이 한 바퀴 돌아 안구 위를 적셨다. 그러나 토니는 처음부터 한결같이, 약간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저 그 웃음. 그 빙긋한 웃음에 어딘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이, 고까워서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스티브의 절망적으로 아래를 향한 어깨의 선이 온몸으로 구두를 거부하는 몸짓을 발현하는 듯 보였지만, 토니는 그따위 것 상큼하게 무시하고, 바스락대는 포장지 안쪽으로 손을 넣어 하이힐을 꺼내 드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완벽한 광택의 진한 블루계열 에나멜의, 10cm 플랫폼 힐이었다. '그것은 무언가의... 무기?' 스티브의 진심어린 말에 토니는 방글방글 웃으며 구두를 바닥에 내려놓기 위해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응. 매력업이란 무기.' 무릎을 거의 굽히지 않고 허리만을 굽혀 스티브에게 굽이 향하게끔 구두를 내려놓고 다시 허리를 드는 동작에 아무 군더더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토니는 후, 하고 입술을 모으며 양손을 허리에 대고 하얀 와이셔츠의 주름이 물결 지는 것을 내버려둔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아이언맨을 한 방에 죽일 세계 최고의 병기지.' 지금 토니 스타크의 음담패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스티브 로저스뿐이었다. 역시 무기였어... 저걸 이렇게 들고 두개골의 갈라진 틈을 노려 이렇게 내려치면 완벽한 한방이야... 스티브는 눈알을 굴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바지 벗고.'

 

 

 

'......'

 

 

 

'바지 벗고.'

 

 

 

스티브는 간신히 들어 올린 오른발을 다시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신어야할지 몰라 몸의 무게중심도 제대로 못 잡을 정도로 휘청 이며 신고 있던 군화를 벗고 오른쪽 다리를 마악 든 순간이었다. 스티브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인지능력이 좀 희미해졌어... 스티브는 약간 저도 모르게 원망하는 눈으로 토니를 흘겨보았다. 그렁그렁하는 파란색의 눈동자가 흐릿해진 것 같았지만, 토니는 그냥 빙그레 웃으며 두어 번 눈을 깜박이며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뭐지 저 깜박이는 눈의 빠르기는... 마치 뭐? 왜? 뭐 잘못됐어? 하는 것 같아.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게 맞겠지만. 스티브는 하아,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싫다, 이건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낭패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더 이상 숨기지도 못하고 스티브는 한쪽 군화만을 벗은 채 다시 눈앞의 구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토니는 그런 스티브를 재촉하지 않고, 그저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슬며시 그 자리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토니의 서재, 대리석의 바닥은 지나치게 깔끔했고 조금 차가웠다. 하지만 토니는 그것으로도 좋았다. 실은, 지금, 스티브가, 무리하게, 반강제로, 하이힐을 신어야만 하는 상황을 앞에 두고 지나칠 정도로 곤란해 하는 얼굴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하반신에 충분한 열이 몰리고 있었기에 좀 식혀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참이었다. 왜냐면, 느긋해야하니까. 세상 늙은이들은 원래 템포가 좀 느리거든. 그리고 하이테크놀러지의 선구주자인 나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장 빠른 존재이지만, 이 순간에서만은 앞서 달려 나가는 능력은 아무 빛을 발하지 못한다. 느릿한 손끝의 행동, 예민한 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토니는 흥분하며 빨리, 빨리를 외치는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나마 느긋한 표정을 계속 이어 지으며 턱을 괴는 여유로움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그렇다, 이런 식으로, 재촉하지 않는 듯 하지만 은연중에 압박하는 이런 식의 단호함이 필요한 거야. 그러니, 스티브. 빨리 벗어. 어서 신어.

 

 

 

그리고 스티브의 결심한 듯이 단호하게 선 갈색의 눈썹이, 거의 일자를 그을 정도로 어딘가 무표정해진 채 스티브는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바지의 지퍼를 열기 시작했다. 벨트의 찰칵거리는 인공적인 소리가 스티브의 지금 상태를 표현하는 듯 했다. 긴장으로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 거였다. 토니는 그런 스티브의 표정을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서 바지를 벗고 힐을 신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봐주지. 그리고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천이 여러 겹으로 겹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스티브의 긴 다리를 감추고 있던 바지가 사라져 단단하고 듬직한 다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토니는 은연중에 눈을 빛냈다. 연한 색 다리의 굵기와 단단한 근육의 형태가 선이나 곡선으로 드러난 다리사이로, 스티브는 도저히 그것만은 오픈할 수가 없었는지 입고 있던 셔츠의 아랫자락을 쭉쭉 그러모아 앞섬을 최대한으로 가리려고 하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진짜 늙은이였다. 늙은이라기보다는, 그러니까 구식이었다. 그래서 요새의 신식(?) 사람들은 100프로 드러내는 노골적인 감각보다 오히려 살짝 가리는 상상의 여지에 더 흥분하는 peeping tom기질이 풍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차라리 당당히 언더웨어를 드러내는 쪽이 토니에게 덜 꽂혔을 것이었다. 근데 지금 그렇게 막 입고 있는 셔츠를 잔뜩 쥔 채 앞부분만을 가리려고 들다가 오히려 양옆의 허리선을 더 드러내면서 당황하여 허둥지둥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제대로 돌직구로 꽂혀버리는데?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캡시클? 토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나는 그가 힐을 신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토니는 저도 모르게 앉은 자세 그대로, 무릎만을 이용하여 앞으로 다가갔다. 스티브는 스스로가 버거워 토니의 수상한 움직임 따윈 보지도 못한 것 같긴 하지만.

 

 

 

그리고 스티브가 오른쪽의 큰 발의 발가락들을 꽈악 조인 채, 우뚝 서 있어서 꼭 대리석 바닥에 박힌 것처럼 보이는 파란색의 하이힐을 향해 뻗었다. 힐의 좁은 발을 넣는 부위가 힘겨워 스티브는 더욱 발가락 끝을 조여야만 했다. 그리고, 좁은 입구에 간신히 집어넣은 발의 돌출된 뼈 부분을 지나자 발가락을 조이던 것을 풀 수 있었고 그제야 발이 신발 안으로 꾸욱 들어가는 느낌, 좁은 입구를 지나 안쪽의 넓은 어느 부위에서 발바닥 살이 따악 맞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에나멜 구두의 신발 안쪽의 쿠션은 부드러웠으나 조여 왔고, 폭신폭신한 감각이 전체적으로 미지근한 하게 느껴졌다. 스티브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모를 압박감에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왼발의 발꿈치를 있는 힘껏 들어 올리지 않으면 오른발과 평형을 맞출 수가 도저히 없었다. 그리고 아, 이런, 역시 ─무리야. 스티브는 약간 기우뚱하더니 결국, 크게 헛딛고 휘청 였다. 그대로 잘못하면 뒤로든 앞으로든 하여간 엄청난 모습으로 엎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다리를 삐거나 마음을 삐거나 둘 중 하나겠지. 스티브는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어버버버 허우적대면서 어정쩡하게 뒷걸음질을 하여 두어 번 왼발로만 깽발을 쳐서 뒤로 가다가, 간신히 토니의 데스크에 닿자마자 두 팔을 뻗어 데스크의 턱을 꽈악 움켜쥐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자 어떻게든 몸의 중심을 바로 잡을 수가 있어서, 스티브는 다행히 앞으로 엎어지거나 옆으로 엎어지거나 어쨌든 발을 잘못 디뎌 쓰러지는 꼴사나운 실수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위기탈출은 하였으나, 힐을 신고 발을 잘못 디뎌 다칠 뻔한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진 스티브는 한순간에 화악하고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위아래로 꽈악 다물었다. 귓불 끝이 화끈거리는 열기가 목덜미에까지 전해져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으으... 부끄럽군...' 스티브는 자기가 혼잣말을 내뱉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힐의 밑바닥을 보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힐이 어떤 식이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콧잔등을 잔뜩 찡그리며 왼발로 바닥을 디디고 오른발을 살짝 들어 10cm 플랫폼 힐의 끝부분을 확인했다. 자기의 굵고 탄탄한 다리를 지나 힐이 끝에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하니 더더욱, 이 힐로 자기 몸을 지탱하는 것은 무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진짜 강산이 변해도 무리인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힐이 너무 얇아... 양쪽을 다 신고 똑바로 서자마자 지탱하지 못하고 뚝하고 부러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스티브는 자신의 체중을 생각했다. 그리고 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여성들의 세상에 둘도 없을 가느다랗고 아름다운 곡선의 몸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힐을 신고 있는 발을 내려다보니, 이 남자의 둘도 없는 튼튼한 발은 힐을 신고 있는 거라기보다는 꼭 힐을 공격하는 것처럼, 팽팽하게. 스티브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토니 스타크. 정말이지 이건 아닌 것 같네. 자네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천재라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정말로 이 힐이라고 하는 것은 끔찍하게도 나와는 맞지 않는...'

 

 

 

그리고 지금

 

자기 자신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몬스터로 변한 것 같은 기분에까지 휩싸인 스티브에게로

 

어느새 무릎을 꿇은 채 다가온 토니의

 

오른손이

 

가만히

 

스티브의 발에 신겨있는 플랫폼 힐의 아랫부분을 감싸 쥐었다.

 

 

 

'!! 토니익..!!!'

 

 

 

스티브는 자기가 내지른 목소리에 자기가 깜짝 놀라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토니가 한손으로 힐의 아랫부분을 감싸 쥐고 또 다른 손으로 발목을 더듬기에 놀라, 지른 비명이었다. 목소리 끝이 뒤집혀져서 자신이 내뱉은 목소리임에도 처음 듣는 목소리마냥 낯설었다. 스티브는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저었다. 데스크 모서리를 잡은 두 손의 악력에 기대어 상체를 기울인 채로, 하이힐이 신겨진 한쪽발만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토니에게 잡혀있는데, 그걸 스스로 내려 보고 있어야 있다니...! 무, 무리 이이상은 정말로 무리... 누가 꿈이라고 말해다오, 오 제발. 스티브의 벌게진 얼굴이 금방이라도 펑하고 터질 것처럼 한계까지 차올랐다. 토니는 스티브가 스스로 틀어막고 있는 입술안쪽에서부터, 무슨 말이 새어 나오고 있는지 뻔히 상상이 갔다. 하지만 스티브는 그 많은 말들의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리라. 그건 아마도, 가장 먼저 내뱉을 말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서. 그리고 혹은, 그 모든 말들을 제대로 말로 만들 수 없을 만큼 머릿속이 엉망으로 엉켜들고 있어서. 그리고 그건 앞으로 점점 더 엉켜들어서, 풀지 못하는 실타래처럼 엉망진창이 되고 말거다. 내가 바로 지금 당장 그렇게 만들어주지. 토니는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웃음을 짓자 토니의 눈 꼬리가 더욱 가느다랗게 길어졌다. 그리고 스티브가 신고 있는 파란색 에나멜의 구두 윗부분, 스티브의 발등부분에 짧게 입을 맞추었을 때, 토니의 웃음은 더욱 깊어졌다. 에나멜 구두의 차가운 기운이 입술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10cm의 굽과, 티없이 빛나는 진한 파란색, 그리고 구두의 시작하는 부분과 꽈악 맞물린 스티브 로저스의 팽팽하게 당겨진 발목의 살.

 

최고였다.

 

 

 

그리고 쪽, 소리가 나게 다시 한 번 키스를 하고 고개를 드니, 눈물이 맺힌 하늘색 눈동자가 진해져서 토니를 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강하게 선명해진 눈망울은 꼭 토니를 원망하는 것처럼 간절하였다. 토니는 그런 스티브가 귀여웠다. 반듯하게 이마위로 넘긴 머리가 어느새 헝클어져 한 가닥 두 가닥씩 귀 아래로 흐트러져가는 것도 참 귀여웠고. 토니는 쥐고 있는 손을 놓을 새 없이 한 손을 더 들어 스티브의 단단한 종아리의 뒷부분의 살을 움켜쥐었다. 살이 근육과 힘줄로 단단하여 토니의 손이 스티브의 다리를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였으나, 조금이나마 겉의 살이 토니가 움켜쥔 모양대로 움푹 파였다. 토니는 손끝에 닿은 스티브의 피부가 열에 더욱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종아리뼈를 타고 오르는 핏줄을 따라 뺨을 비비며, 토니는 자신의 수염이 스티브의 살을 스치는 감각을 즐겼다. 스티브의 다리가 도망갈 것처럼 튀어 올랐다. 수염의 감각이 싫은 것이리라. 하지만 어느새 두 손으로 움켜잡아, 다리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토니는 서두르지 않고 스티브의 발목에서부터 천천히, 뺨으로 그의 다리를 역 주행하였다. 매끄러운 맨살의 표면이 뺨에 닿아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토니는 더욱 스티브의 다리의 뺨을 밀착시키며 자연스럽게, 두 손을 움직여 스티브의 발목과 발아래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스티브의 무릎에 입을 맞추었다. 무릎은 동그랬고 여러 개의 깊은 상처가 있었고, 뼈의 모양이 선명했다.

 

 

 

'...다음에는, 꼭 좀'

 

 

 

'...~! ..읏...'

 

 

 

'다음에는 꼭 좀 이쯤에 가터벨트.'

 



 

무릎 약간 윗부분에도 쪽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며 키스하면서, 토니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스티브의 다리를 쓸어내렸다.

 

 

 

'...!'

 

 

 

'스타킹 신은 채의 가터벨트를 말이야. 아... 내가 바보였어. 처음부터 하이힐과 세트로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맨살의 감촉도 최고지만, 약간 아쉬운걸...'

 

 

 

'...!! 그, 그만! 토니 제발 그만..!!'

 

 

 

그러나 불이 붙어, 토니는 멈출 수가 없었다. 스티브가 놀라 눈을 크게 떠 그 반동으로 고여 있던 눈물이 스티브의 뺨에 닿지도 않고 툭하고 떨어졌지만, 그리고 그 툭하고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물론 토니도 보고 있었지만, 그러나 불이 붙어버려서 토니는 도저히 이제 멈출 수가. 절대로.

 

 

 

그래서 토니는 스티브의 기겁을 그냥 내버려두고, 따라오지 못하는 스티브의 정신도 그냥 내버려두고, 행동에 옮겨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토니는 스티브의 쥐고 있던 플랫폼 힐 아래를 잡은 채 그대로 스티브의 다리를 당겨, 자신의 가랑이사이를 구두 앞 가보시로 꾸욱 눌렀다. '힉..!!' 스티브는 구두 끝의 감촉까지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말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그 그만..!!' 스티브의 높은 음의 신음이 비명처럼 흘렀고, 토니는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스티브의 목청 어디에 붙어있는지가 궁금했다. 꼭 좀 그의 목 안쪽을 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혀로, 모든 것으로. 토니는 혀를 내밀며 자신의 팽팽해진 앞섬으로 스티브의 힐을 더욱 잡아 끌며 성기를 꾸욱 누르게 했다. 아... 흥분된다. 진짜 흥분돼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 제대로 죽겠는데, 아이언맨은. 토니는 그대로 스티브의 무릎을 더욱 깨물고는 스티브의 다리를 자신의 가랑이로 꽈악 움켜잡았다. 스티브는 계속 입 안쪽으로 안 돼, 안 돼를 울먹이고 있었다. 울음이 섞여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았다. 평소 말꼬리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말에 가감이 크게 없었던 스티브의 목소리가 지금은 점차 울음이 섞여서는 희미해지고 가느다래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때문에. 토니는 가슴이 뛰었다. 토니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더욱 힘을 주면서 스티브의 다리를 더듬어 올라갔다. 그리고 발목을 움켜쥔 채 위아래로 스티브의 다리를 움직여 밀어붙인 자신의 성기의 존재감을 더했다.

 

 

 

'토니, 토니..!! 토니..!'

 



 

'후우.'

 

 

 

스티브는 속수무책으로 토니의 이름만을 정신없이 반복하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아, 스티브. 아니야. 눈 떠. 눈을 떠줘. 네가 봐줘야지. 이런 날 봐야지. 토니는 스티브의 허벅지 안쪽을 길게 할짝이면서 자신의 바지의 지퍼를 풀었다. 찌익- 하는 소리가 공기를 찢는 것 같았다. 토니는 바지와 언더웨어를 한꺼번에 반쯤 내린 후에 스티브의 발을 다시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이미 절정의 입구를 두드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토니는 자신의 힘으로 스티브의 다리에 성기를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방심하면 금방 절정에 달할 것 같아졌다. 스티브는 종아리부분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간의 한계를 넘은 듯 한 뜨거움에 더욱 기겁을 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토니는 씨익 웃었다. 스티브에게 신긴 파란색의 구두가 끝에서부터 쿠퍼액에 젖어 번들거렸다.

 

 

 

'스티브.'

 

 

 

'...!!!'

 

 

 

이름을 부르지 말아줘.

 

이런 때에.

 

이럴 때만.

 

 

 

'가고 싶어 죽겠어.'

 

 

 

'......'

 

 

 

'보내줘. 죽을지도 몰라. 죽기 전에, 가게 해줘.'

 

 

 

'......'

 

 

 

스티브는 몸의 힘을 완전히 빼버렸다. 어차피,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토니도 잘 알고 있겠지. 스티브는 흐트러져가는 자신의 숨결너머로 간신히, 아주 조금, 눈을 떴다. 토니의 가랑이사이에서 더러워져가는 자신의 오른쪽다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토니의, 기분 좋아 보이는 입 꼬리 끝과, 상기된 뺨과 흐릿하게 충혈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하여간 그랬다. 토니의 완전히 팽창한 채 서 있는 성기가 자신의 다리에 달라붙어 비벼지고 있음에도, 기겁하며 다리를 움직이지 않은 것은 하여간 그런 탓이었다. 토니의 눈과, 토니의 다리에 달라붙는 숨결과, 토니의 두 손의 체온과, 토니의 허벅지에 닿은 뺨과, 하여간 그런 것들 때문에. 결국 스티브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티브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토니가 자신의 성기를 문 것과 동시에 고개를 깊게 눌러 자신을 한 번에 전부 삼켜버렸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전신의 모든 신경이 알려주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전율과 동시에 다리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오싹함이, 스티브의 전신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내가, ...죽을 맛, ..... ......토니.....'

 

 

 

손안에 움켜쥔, 토니의 땀에 젖은 머리칼이, 아주 약간 미지근하고, 아주 약간 곱슬하고.

 

눈물이 넘쳐 주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볼에 닿는 눈물방울조차 뜨겁다.

 

하아, 천장을 향해 숨을 뻗으니 습기 찬 숨이 다시 얼굴에 와 닿았다.

 

 

 

정말이지 나쁜 사람이다.

 



 

너.

 

 

 

스티브 로저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랫입술을 떨었다.

 

 

 

그 생각 끝으로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 Fin

@bardzo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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